트위터, 페이스북 이용자들과 인터넷 e-mail 등으로 스팸 메일이 퍼지고 있다는 소식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현제 증상은 페이스북 친구들의 담벼락에 자동으로 링크 되거나 컴퓨터 내
중요파일들을 삭제 한다고 하니
빈라덴 사살 유출 동영상 –오바마가 본 관련된 스팸 e-mail 에 주의 하세요.
스팸 메일(spam, junk e-mail) 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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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팸은 불필요한 인터넷 메일을 말하는데, 쓰레기와 다름없다 하여 때로 "정크 메일"이라고도 불립니다. 보내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그것은 대개 유즈넷 토론그룹과 같은 곳으로부터 가입자 주소를 하나하나 모으거나, 또는 이메일 배포 목록을 만드는데 특화 되어 있는 회사로부터 주소목록을 구입한 다음, 그곳에 대량의 메일을 보내는 형태 입니다.
빈 라덴은?
사우디 부호의 17번째 아들
22세때 아프간 참전…징병제도 만들고 私兵 훈련
이슬람 과격분자들의 정신적 지도자
전 세계의 이목이 호리호리한 체격에, 나직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를 가진 40대의 한 아랍인 남자에게 쏠려 있다. 아프가니스탄에 숨어있는 것으로 알려진 이슬람 과격분자들의 정신적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Osama bin Laden).
그는 지난 11일 미국 뉴욕의 세계무역센터와 워싱턴 국방부 대참사를 주도한 용의자로, 또 숱한 테러의 배후인물로 지목돼 미 CIA(중앙정보국)로부터 일급 범죄자 낙인이 찍혀 있다. 종전의 테러 개념을 넘어서, 21세기형 신종 테러를 선보인 그는 냉혹한 테러리스트일까, 이슬람제국의 재건을 꿈꾸는 희대의 몽상가일까? 빈 라덴에 대해서는 너무 많은 이야기가 있고, 어느 것이 정확한지 가늠하기 힘들 정도다.
미 CNN과 타임지, 영국 BBC방송 등에 따르면 1957년생인 빈 라덴은 사우디의 건설 부호인 모하메드 아와드 빈 라덴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1930년 예멘에서 사우디로 건너가 건설업으로 큰 돈을 번 인물. 10명도 넘는 아내와의 사이에 52명의 아들을 두었다. 빈 라덴은 그 중 17번째 아들이다. 어머니는 팔레스타인 또는 시리아 출신으로 알려졌다. 아버지가 사우디의 왕가와 친분이 있어 이슬람교의 성지인 메카와 메디나의 이슬람사원 재건공사를 따냈다. 빈 라덴의 전기 작가인 피터 베르겐(Peter Bergen)은 16일 영국의 선데이타임스지에 기고한 글을 통해 "빈 라덴은 어린 시절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종교적 신념이 강하다"고 밝혔다. 아버지는 그가 10세 때 비행기 사고로 죽었다. 청년 빈 라덴은 평범했다. 하지만 킹 압둘 아지즈대학에 다니던 시절에도 이슬람교에 푹 빠져 지냈다고 주변 사람들은 증언했다.
졸업 직후인 1979년, 소련의 아프간 침공을 보면서 22세의 빈 라덴은 아프간으로 건너갔다. 아버지 회사에 있던 불도저와 덤프 트럭 같은 건설 장비도 챙겨갔다. 당시 빈 라덴은 이미 폭파 전문가였다. 지난 96년 타임지와의 인터뷰에서 빈 라덴은 "아프간의 하루는 이슬람사원에서 1000일 기도를 드리는 것과 맞먹는다"는 말로 '소련과의 성전'에 뛰어든 이유를 밝혔다. 소련과 맞서 싸울 병사도, 무기도 없는 아프간에서 그는 조직적으로 군대를 키워나갔다. 징병제도를 만들고 아랍 전역에서 젊은 이슬람 전사를 모집했다. 86년에는 파키스탄 국경에 인접한 지역에 첫 군사캠프를 세웠다.
당시 그가 이끌던 무장조직은 7개의 주요 무자헤딘(이슬람전사) 조직 중 하나였다. 무자헤딘 지휘관을 지낸 한 추종자는 타임지에 "빈 라덴은 전투에서 언제나 선봉에 섰던 우리의 영웅"이라고 말했다. "호화로운 거처에 머무는 대신, 아프간의 농부, 전사들과 함께 먹고 자고 참호를 팠고, 그것이 빈 라덴의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오늘의 빈 라덴을 만드는 데 커다란 공(?)을 세운 주역이 미국 CIA라는 점도 아이러니다. 당시 CIA는 소련군을 몰아내기 위해 아프간의 게릴라 지도자들에게 무기와 자금을 지원했다.
영국 BBC 방송은 중동문제 전문가인 하지르 테이무리안의 분석을 인용, "빈 라덴이 CIA로부터 훈련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89년 소련군 철수 뒤, 빈 라덴은 사우디로 돌아갔으나 반 정부·반미 활동 때문에 쫓겨났다. 걸프전을 계기로 빈 라덴의 반미 감정은 격렬해졌다. 과격 이슬람단체들이 "성지를 더럽혔다"며 미군기지를 공격한 사건 때문에 빈 라덴은 사우디에서 쫓겨났다. 91년 가족과 추종자를 데리고 수단으로 옮겨가 5년간 살면서 염소가죽 가공공장, 건설회사, 은행, 해바라기 농장, 무역회사 등의 사업을 벌였다. 사우디의 다란 미군기지가 폭파되자, 미국의 압력으로 빈 라덴은 96년 수단에서도 추방돼 아프간으로 갔다. 한 무자헤딘 지휘관은 "빈 라덴은 탈레반 정권이 아프간의 수도 카불을 점령할 당시에 자금을 지원했다"고 증언했다. 그 덕에 빈 라덴은 탈레반의 지도자 모하마드 오마르(Mohammad Omar)가 가장 신뢰하는 후원자가 됐다.
탈레반 정권이 빈 라덴을 필사적으로 보호하는 것은 오마르와 빈 라덴 두 사람이 '투쟁의 동지'임과 동시에 '끈끈한 가족관계'를 맺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AFP는 17일 "빈 라덴에 대한 책을 쓴 요셉 보단스키(Yossef Bodansky)에 따르면, 지난 98년 오마르는 빈 라덴의 맏딸과 결혼, 그의 사위가 됐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빈 라덴이 오마르의 사위라는 이야기도 있는 등 두 사람 관계는 의문투성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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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히 빈 라덴 미래를 알 알 볼 수 있는 사이트 소개